101121 단상

 

0. 그동안 격조하였다.


1. 수유+너머의 세미나를 자발적으로 철회하였다.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. 세미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플라톤의 후기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데, 지금의 나로선 그것까지 공부할, 그러니까 <티마이오스>와 <필레보스>, 게다가 박홍규 선생의 <플라톤 후기 철학 강의> 등을 읽을 시간이 없다. 이들을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다니게 된다. 나 좋은 일은 못 해도 남 좋은 일을 굳이 하긴 싫다. 제대로 하지 않을 바에야 안 하는 것이 낫다.


2. 제대로 하지 않을 바에야 안 하는 것이 낫다. 기말이 다가올수록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므로, ‘선택과 집중’을 하려고 한다. 가지치기를 해도 곁가지가 많이 남는다. 한편 수유+너머의 분위기는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다.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. ‘차원’을 이야기하고 ‘연속’을 이야기한다. 그것이 사실이라도, 그것을 굳이 알고 싶진 않다. 솔직히 말하건대 들뢰즈니 하는 사람 말을 열심히 이야기하려는 것 같은데, 내가 아는 바가 없어서 또 너무 애매한 말들이 많아 함구하였다. 도대체 ‘차이’가 뭐라고 ‘반복’하는지 모르겠다. 나는 차라리, 하이데거와 베르그송을 들고 나왔으면 좋겠다. 어쨌든 별다른 일이 아니면 그곳엔 다시 갈 일은 없을 듯하다. 설교를 듣는 기분이었다.


3. 콰인의 <논리적 관점에서>(서광사)라는 책을 읽는다. 꽤 훌륭한 책이다. 논문이 밀도 있게 짜여 있고, 부분마다 생각을 요한다. 분석철학 쪽은 거의 읽지 않아 막히는 것이 많긴 하지만 꽤 흥미롭다. 사실 어쩔 때는 ‘조잡’해보이기도 한다. 콰인은 꽤 유명한 분석철학자로 알고 있는데 알려진 책이 얼마 없다. 도대체 <말과 사물>도 번역이 안 되어있다. 지젝이니 들뢰즈니 하는 사람들의 책은 몇 년을 멀다하고 수없이 번역된다. 무언가 꺼림칙하긴 한데, 구체적으로 뭐라 말하기 어렵다.


4. <순수이성비판>을 다시 읽어야 한다. 콰인의 책을 읽는 것도 그 때문이다. 학기 초에 ‘기회’가 주어졌을 때 부지런히 따라 읽었어야 했다. 그랬으면 하이데거의 <문제>도 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터였다. 읽는 초점은 선험/후험, 분석/종합의 구분이다. <비판>에서의 칸트의 시도는 ‘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?’(B19)이다. 아니 그 전에, 혹은 그와 더불어, 도대체 ‘선험적 분석판단’은 무엇이란 말인가? 우리가 판단을 ‘했다’라고 할 때 분석 개념이 독자적으로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? 종합판단이 아닌 판단은, 종합판단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인가?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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